열한번째 행성 알칸디아: 1. 새로운 여정의 시작
구름 한 점 없이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 그 밑으로는 저 멀리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높은 산맥들이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길게 죽 늘어서서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마치 커다란 장벽을 연상 시키고 있었다.
만년설이 내려 하얀 봉우리들 아래로는 그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빽빽이 치솟은 나무들이 숲을 이루어 펼쳐지고, 한쪽으로 굽이쳐 흐르는 강 사이사이 너른 들판에는 초식 동물들이 군데군데 모여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살랑살랑 내 귀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와 아주 작게 재잘거리는 소리. 나는 앞이 탁트인 개방감이 있는 동산에서 이 광경을 가만히 눈에 담고 있었다. 한가로운 저 모습 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느끼고 싶은 자연의 모습이다.
"너는 어째서 항상 새로운 행성에만 오면 마을에서 아주 먼 오지로 떨어져 내려와서 나를 귀찮게 하니? 도착하면 꼭 한두시간씩 안움직이고 가만히 멍때리고 있고 말이야 애런."
내 주변에서 계속 얼쩡거리며 귀에 대고 쫑알거리는 아주 작고 가녀린 그녀. 내 눈에만 보이고 내 귀에만 들리는 이 존재의 이름은 '아일라'다. 그녀의 풀네임 아이리 라 아르보리아, 아르보리아 성계의 주인이자 관리자 인 그녀 그녀는 스스로를 우주의 초고위 존재중 하나 라고 말하며 자신의 전장으로 지구에서 나를 소환했다.
나? 나는 지구라는 곳 그중 대한민국에서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던 인간에 불과 했다. 점심 무렵 식사를 하고 잠시 쉬고 있던 참에 영문도 모른 채 이곳까지 왔고 아일라를 만나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설명을 듣고 그녀의 전쟁에 참여 했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이름 조차 생소한 이 열한 번째 행성까지 오게 되었느냐고 하지만 나 애런 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아일라에게 나는 이 거대한 행성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열쇠 이자 그녀가 실체화 되어 이 우주에 간섭 할 수 있게 하는 통로 이기 때문이다. 아일라는 나를 통해 세상을 보고 나는 그녀를 통해 우주의 힘을 빌린다. 우리는 서로를 밀어 내면서도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기묘하고도 숙명적인 동행자 였다.
벌써 열한 번째 행성이다. 저 멀리 보이는 평화로운 마을은 곧 아일라와 내가 맞닥뜨려야 할 전장이 될 것이다. 나는 천천히 가볍게 기지개를 켜며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아일라는 내 어깨 위에 앉으며 혀를 빼물고 웃었지만 그녀의 눈빛 만큼은 이 행성의 운명을 꿰뚫어 보는 듯 차갑게 가라 앉아 있었다. 내가 움직이자 몸 안에서 대기를 감도는 익숙한 힘을 느꼈다. 아일라의 힘 이었다. 이제 익숙해 질만도 했건만 아직도 낯선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의 힘에 고양감을 느끼며 아일라에게 넌지시 말했다. "가자 아일라. 네가 말한 그 '운명' 이라는게 이 행성 어디에 숨어 있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그러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요했던 숲의 공기가 기분 나쁘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거대한 먼지바람이 일고 있었다. 그것은 평화로운 평원의 너머를 향해 진격하는 불길한 전조 였다. 아일라가 예고한 그 운명은 이미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나는 첫 발걸음을 떼며 이 행성이 감추고 있는 거대한 비밀의 문을 열 준비를 마쳤다.
그때 홀연히 아마록 대전사가 나타났다. 그는 나에게 충성의 군례를 취하며 무릎을 꿇었다.
"가장 높은 곳의 정점(High-Arch) 이시며 여기 이 대지 위의 거짓된 것을 거두고 오직 당신의 순수한 힘(Power) 으로 이 땅을 정화 하소서!"
이 오글거리는 아인종은 웨어울프족의 대족장인 뱅가드 탈란이다. 그와는 첫 번째 행성인 아도리안 에서 만났다. 거기는 스코메타 아인종 들과 전쟁을 하고 있던 중 이었는데 완전 혼돈 종족 이었고 통합도 안되어 그냥 중구난방 보이는 대로 전쟁이었다. 다행이랄까 그곳 아도리안은 암흑류가 간섭을 하지 않았다. 아일라가 있는 중심에서 가까운 곳에 있어서 그런지 암흑류는 없었다. 스코메타 아인종 중 킹코모도 리자드맨 멀록 카에루 등 포유류종 대부분을 나의 제1야전군 으로 편성 했다. 탈란은 그중에서도 나의 호위와 별똥부대로 나와 늘 함께 움직이는 부대다.
그런 탈란이 나에게 보고를 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약 100km 밖에 굉장히 수상한 거대한 탑이 있습니다. 탑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상당히 큰 도시가 있다고 합니다. 한 나라의 성도가 아닐 듯 싶습니다. 인구는 보이는 인원 만으로 50만 정도 이고 다양한 유사인종들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사료 됩니다. 그리고 엔트족의 흔적도 발견 되었다고 보고가 들어 왔습니다. 위대한 이시여."
나는 탈란의 보고를 받고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허, 아마 9번째 행성의 그 앤트족인 것 같은데....'
"아일라, 어떻게 생각해? 이번에도 좋은 일은 안 생기겠지?"
내 어깨 위에서 아일라가 진저리를 치며 대답했다. "와, 또 그 꼴통족들 이라니! 머리 아프게 생겼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헤일 스토미아 처럼 절멸전으로 가면 안되는데"
"글쎄, 여기는 그곳 행성과는 환경이 많이 다르니 좀 다르지 않을까? 설마 절멸전까지는 아니겠지. 내 생각엔 다른 종족들도 더 있는것 같아."
"그래? 애런, 그럼 얼른 가보자!"
"알았어. 뱅가드 탈란, 안내하라. 테트라모프는 하지 않는다. 도보로 이동한다. 지나면서 일단 주변을 살펴봐야겠다."
"예, 알겠습니다!"
그의 대답과 함께 웨어울프들이 하나둘 테트라모프로 소환 되었다. 늑대가 인간화된 종족, 웨어울프(Werewolf). 나의 10개 야전군 중 제1야전군이자 호위 군단인 그들은 가장 용맹하고 충성심이 강한 집단이다. 지금은 정찰을 위해 내 호위 부대 중 최정예 만이 이 행성에 발을 디뎠다. 그들은 나와 아일라를 호위하듯 빠른 걸음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이동하는 동안 잠시 9번째 행성 헤일 스토미아를 떠올렸다. 원래 아인종의 행성 이었으나 앤트족의 가공할 번식력과 갑각에 밀려 아인종들이 가축으로 전락했던 비극의 땅.
앤트족은 암흑류의 신 '아모슈나잇'의 첨병이자 암흑 계열 중 수위를 다투는 기계적인 군단 이었다. 그들과의 전쟁은 늘 멸망전 이었으나 내가 직접 나서서 그들을 전멸 시키고 피폐해진 헤일스토미아를 다시 테라포밍 하는 중이다. 그나마 최고의 성과는 앤트족 서열 2위 여왕 '바르바도'를 생포해 설득 시키고 나의 10번째 군단으로 삼은 것이다. 그들의 번식 능력을 우리 편으로 돌린 것은 전쟁에서 아주 유리한 한 수가 되어 줄 것이다.
'이제 11번째 행성인 알칸디아 에 또 앤트족 이라니... 복불복 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도 이제 제대로 된 전략을 구사할 수 있게 되었으니.'
생각이 꼬리를 물 무렵 앞서 나가던 정찰조가 신호를 보내왔다. 가는 길에 수상한 무리가 포착 되었다는 보고였다. 나와 군대는 이동을 멈추고 경계를 강화했다. 저 멀리 적지 않은 숫자의 인영들이 차가운 냉병기를 든 채 우리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나는 어차피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늘 방관자로 머물러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그저 조용히 지켜 보기만 해야 했다. 그들이 이 행성의 토호 세력인지 아니면 또 다른 위협인지 아직은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일라 네가 보기엔 어때 보여?" "글쎄 악의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호의적이지도 않고 잘 모르겠어 헤헤"
나는 그 너머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