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 신화의 시작점, 우리가 몰랐던 개척자 강기동 박사를 기록하며

[서론: 거목의 시작은 언제나 외로운 씨앗이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반도체 강국'입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 반도체가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지요. 하지만 이 거대한 신화가 과연 누구의 손에서 시작되었는지 기억하는 이는 드뭅니다. 오늘 [기록의 나무 그늘 밑]에서는, 모두가 불가능을 말할 때 홀로 반도체의 미래를 보았던 선구자, 강기동 박사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자 합니다.

[본론 1: 안락한 미국 생활을 버리고 조국으로 돌아온 천재]

1970년대 초, 강기동 박사는 미국 모토로라에서 반도체 설계의 핵심을 다루던 촉망받는 공학자였습니다. 당시 한국은 가발과 섬유를 수출하며 끼니를 걱정하던 시절이었지요.

그는 안락한 미국 생활을 뒤로하고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내 조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는 일념 하나였습니다. 1974년 경기도 부천의 황무지에 세운 '한국반도체'. 이것이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반도체 웨이퍼 가공 공장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가 만드는 '웨이퍼'를 보고 밥그릇 만드는 거냐며 비웃었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본론 2: 이건희 회장과의 운명적 만남, 그리고 신화의 탄생]

기술은 천재적이었으나 자본의 벽은 높았습니다. 회사가 자금난에 처했을 때, 강기동 박사의 진가를 알아본 이가 바로 젊은 시절의 이건희 회장이었습니다.

강 박사는 이 회장에게 **"반도체는 산업의 쌀입니다. 미래를 위해 이 사업을 꼭 하셔야 합니다"**라고 설득했고, 결국 삼성은 그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게 됩니다. 오늘날 세계 1위 삼성전자 반도체의 모태가 된 뿌리는 바로 강기동 박사의 집념이었던 셈입니다.

[결론: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을 위하여]

강기동 박사의 삶을 돌아보며 생각합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먼저 가는 '개척자'의 외로움이 얼마나 컸을까요. 그가 심은 작은 씨앗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먹거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화려한 꽃만 보고 그 뿌리를 잊고 살곤 합니다. [기록의 나무 그늘 밑]에 이분의 이름을 남기는 이유는,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역사를 바꾼 그 숭고한 정신을 기억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강기동 박사님 같은 선구자가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현재 그는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에서 사시고 계십니다.

 "나는 실패한 사람이 아닙니다."

SK HYNIX NEWSROOM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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