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의 기록, 신라의 숨결: ‘쿠쉬나메’가 증언하는 천 년의 인연
1. 잊힌 서사시, 쿠쉬나메(Kushnameh)의 발견
11세기경 페르시아에서 구전되던 이야기를 정리한 대서사시 ‘쿠쉬나메’는 우리 역사학계에 놀라운 화두를 던졌습니다. 이 기록에는 7세기 중엽 사산조 페르시아의 멸망 이후, 왕자 ‘아브틴’이 유민들을 이끌고 동쪽 끝의 낙원 ‘바실라(Basilla, 신라)’로 망명했다는 구체적인 정황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설화가 아닌, 고대 실크로드를 통한 문명 간의 실질적인 교류를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입니다.
2. 운명적 조우: 아브틴 왕자와 프라랑 공주
서사시의 중심에는 페르시아 왕자 아브틴과 그를 맞이한 신라 국왕의 딸 ‘프라랑(Frarang)’ 공주가 있습니다. 기록 속 프라랑 공주는 지혜롭고 자애로운 인물로 묘사되며, 이국에서 온 왕자와 국경을 초월한 결합을 이룹니다. 이들의 만남은 서로 다른 두 문명이 대립이 아닌 ‘포용’과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음을 상징합니다.
3. 이름에 담긴 비밀: ‘프라랑’은 우리말 ‘파란’이었을까?
페르시아어로 ‘우아한 여인’ 혹은 ‘꽃’을 뜻하는 ‘프라랑’이라는 이름은 언어학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추론을 가능케 합니다. 신라 시대의 고어 음운 체계를 살펴볼 때, 이는 우리말 ‘파란(Paran)’ 또는 **‘바란’**의 음차일 가능성이 큽니다.
파란: 동해의 푸른 바다와 청색을 숭상했던 신라의 문화적 배경을 반영한 이름일 수 있습니다.
바란: ‘바라다(소망하다)’는 뜻을 담아, 국가적 위기 속에서 태어난 희망의 상징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4. 두 세계의 결실, 영웅 페리둔과 피슈다디 왕조
아브틴과 프라랑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페리둔(Feridun)’**은 이 서사의 진정한 주인공입니다. 신라의 정기를 이어받은 그는 페르시아로 돌아가 폭군 자하크를 타도하고, 인류 문명의 법과 질서를 처음으로 세운 전설적인 **‘피슈다디 왕조(Pishdadian Dynasty)’**를 일으켜 세웁니다.
이란인들에게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페리둔의 혈관 속에 신라 공주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과 이란이 천 년 전부터 맺어온 깊은 ‘혈맹’의 역사를 증명합니다.
5. 맺음말: 문명의 교차로에서 다시 쓰는 역사
‘쿠쉬나메’는 우리에게 역사를 바라보는 더 넓은 시야를 제공합니다. 페르시아어로 기록된 신라 공주의 이름 ‘프라랑’ 속에 숨겨진 우리말의 흔적을 찾는 일은, 잊혔던 우리 역사의 역동성을 회복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천 년 전의 이 장엄한 교류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서로 다른 문명이 만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때, 인류의 역사는 한 단계 더 진보한다는 사실입니다
